일상 그리고 사회.

#82. 나는 더 이상 사주를 믿지 않기로 했다.

결국은 푸른하늘 2022. 7.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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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사주나 점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연 초나 연 말이 아닌데도 일부러 찾아가서 들어보기도 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는 대부분의 사주나 점집에서는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준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기사 하나를 본 적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사주나 점을 보러가는 이유 중 하나가 희망을 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라고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치열한 현대사회, 다수의 경쟁이 포진한 이 세계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면 눈물부터 나오는게 요즘 세대들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나도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사주가 생각만큼 흔히 말하는 "대박 날 사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희망차고 꿈이 가득한 말을 해주는 사주나 점집이 별로 없다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주가 변하는걸까? 아니면 내 특유의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사주가 바뀌는 걸까? 

그냥 보아도, 내 주변에 결혼 안한 사람은 나 뿐이고, 또 결혼을 안한 지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지인들은 직장이 좋거나, 재산이라도 많지,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결혼하지 않은 대한민국 하나의 흔하디 흔한 미혼인 사람이라는 것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밑도끝도 없이 너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일부러 사주보러 가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았는데, 지난 주말, 집안 행사가 있어 지방에 내려간 김에 할머니의 오래된 친구이자, 우리의 사주를 몇 십년 동안 봐주고 계신 할머니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나한테 대뜸, 시험 잘 안된거 아는데, 놀고 있느냐, 직장 다니고 있느냐 물어보셨다. 

할머니가 프리랜서의 개념을 알리 만무하고, 또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하는데 한참 걸릴거 같아 그냥, 직장 다니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사주 보는 것에 한 번에 미련이 떨어진 적이 있는데, 예전에 엄마가 사주보러 갔다가 그 사람이 나보고 올해는 시험운이 있다 했는데, 나는 바보같이 그걸 믿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시험 준비를 했더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자마자, 사실 작년에 나를 만났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은근히 발을 빼는 모양새였다.)

그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내 인생에서 내가 주체자가 되지 못하고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않을 남의 말에 휘둘려 내 시간과 돈을 낭비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이 공부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할머니는 갑자기 나한테 내 후년까지 결혼하지 못하면 인생에 풍파가 많아질거라는 x소리(내 마음, 내 공간이니 이렇게 표한하고 싶다)를 시전하시더니, 내가 성별이 다르게 태어났더라면 큰 사람이 됐을 텐데 안타깝다는 악담 중에 악담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할머니라도 너무 미웠다. 너무 싫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러는거지?  다시는 갈 일은 없을거라고 다짐했다.)

 

성별이 다르게 태어났더라면 더 큰 사람이 됐을꺼라고? 세상에, 그런 악담 중에 악담이 어디있단 말인가?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그런 의미 아닌가? 

 

그 말을 듣고나서는 당황한 마음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나왔지만, 할머니 집에서 나와 걷는 동안 너무 화가 나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왜 내가 타인에게 존재까지 부정당하는 말을 들어야하지? 

 

더군다나, 내 자신은 왜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타인이 마음대로 지껄이는 말에 휘둘리는거지?

내 인생인데, 왜 자꾸 타인의 말에 내가 기대고 있는것인가?

 

오은영 박사님이 하신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외부 자극"과 "결과" 사이의 공간이 "나"로 꽉 차 있어야 타인의 비판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언제나 자신의 중심에 "나"가 있어야 한다. 라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나 자신의 중심에 "나"가 아닌 "타인의 말"을 두었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 자신은 만족감을 느끼지만, 막상 타인에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하려면 주저하게 되는 것이었다. 타인이 내가 하는 일, 내 나이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할까봐 라는 "나 중심"이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된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도 나한테 시험 붙을꺼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난 시험에 붙지 못했고, 몇 년전 이직이 잘 될거라했지만 그 회사에서는 최종에서 떨어졌었다. 

할머니 아들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보다는 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할머니 말에 휘둘릴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을 것이다 (그랬다면, 할머니 아들도, 할머니도 지금은 때부자로 살고 있어야한다. 적어도 할머니 손녀들이라도).

 

쉽지 않겠지만, 내 중심에 "나"가 있을 수 있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더 이상 사주니 점이니 보러다니 않을 것이다.

 

근데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 난 이렇게 사는게 내 마음이 편한데, 이게 정말 행복한걸까? 이렇게 가는게 맞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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